공포의 선율을 흥얼거리며: 김영은, 송수민, 임재환, 카일 타타
2021년 8월 21일 - 10월 9일
오프닝 리셉션: 8월 28일, 4-7PM






끝이 없는 전쟁과 평화. 극과 극 같아 보이는 이 두 현실이 한국에서는 상호 공존해왔다. 1953년 한국 정전협정 체결로 전쟁은 중지되고 한반도 내 모든 무력행위는 금지되었지만, 협정상 일시적으로 중지된 전쟁은 말 그대로 반쪽짜리 평화일 뿐이었다. 이러한 불완전한 평화 속에서 전쟁에 대한 공포는 전후 70년간 공포 영화 속 서스펜스 장면의 선율처럼 한반도를 맴돌아왔다.

헬렌제이 갤러리는 한반도와 전쟁, 그리고 삶 속의 공포를 주제로 한 전시 <공포의 선율을 흥얼거리며>를 선보인다. 본 전시는 로스앤젤레스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작가의 각기 다른 다양한 작업을 통해 한국 전쟁과 현대 사회를 비평적인 시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군사적 긴장과 전쟁에 대한 집단적 무의식적인 공포는 한국의 대중매체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전시 내 송수민의 회화는 단순히 유희적 역할을 넘어 내재된 무의식적 공포의 표출로서 기능하는 한국 대중매체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신문과 기사글, 웹사이트 등에서 사진을 모아 그 사진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때까지 보관해둔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작가는 이 사진들을 작가의 직관과 조형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엮고 재배치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미지들은 새로운 맥락과 서사를 갖는다. 송수민의 이러한 개념적인 회화 방법론은 전시 속 <물불 물불>과 <하얀 자국> 시리즈에서 빛을 발하는데, 나열된 그림 속 ‘하얀 자국'으로 표현된 의문의 물체들은 휴양지 공원 속 호수의 분수 혹은 군사훈련 속 미사일 구름이 되기도 하면서 평화와 불안을 동시에 표의 한다.

이러한 미디어 속 불안의 이미지가 누군가에게 의도이자 치밀한 구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카일 타타의 시리즈 <Lookout Mountain Lab Production Notes>는 현재 만연한 미디어 속 내재된 불안과 공포의 원형을 20세기 중반 미국 대중문화에서 찾는다. 작가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 국방부에 의해 자금이 조달되고 운영되어 온 할리우드 제작사 Lookout Mountain Lab에 관심을 갖고 복원된 아카이브 속 이미지를 차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사진 콜라주를 만든다. 자신의 작업을 사변적 사색이라고 소개하는 작가는 그의 콜라주를 통해 할리우드 미디어 산업과 미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비평적이고 다원화된 시점으로 바라본다. 아카이브 속 이미지의 물체성과 사진 현상의 화학적 과정을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한 이미지에 함께 사용하는 작가의 과정은 그 자체로 이미지-제작(image-making)을 물질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유물론적인 절차로 환원시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날로그 사진의 실험과학적인 측면을 부각하며 과학기술과 미디어, 패권, 전쟁의 교차점으로서의 사진을 생각해보게 한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나라에서 이러한 대중매체의 작용 방식은 필연적으로 시청자와 묘사된 자 그리고 묘사된 자연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재정의한다. 북한을 대중매체로만 접한 사람들은 그곳의 강산과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다학제적 매체를 통해 행동주의 예술을 실현하는 임재환은 2000년대 초반 어린시절 방문한 금강산의 기억을 되뇌인 작업을 선보인다. <금강산> 시리즈는 회화와 비디오라는 두 개의 다른 매체로 금강산을 재현하고자 한다.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에 그려진 회화 속 금강산은 산의 절경을 표현하며 흡사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한편 동시에 회화의 평면성을 거부하는데 이는 검은색 붓 자국이 빛과 만나 커튼과 같은 플라스틱을 통과해 만드는 그림자와 바람과 중력에 따라 흔들리는 그림의 물질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비회화적 회화적’ 장치들은 금강산을 단순한 풍경을 넘어 정치 사회적인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동적인 존재로 묘사하게 된다. 금강산을 대안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작가의 비디어 작업을 통해 계속된다.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담담히 서술되는 영상 초반 금강산 여행 중 마주하는 북한은 긴장과 공포, 불확실성의 땅으로서 묘사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서사가 진행되며 전복되는데, 화자는 금강산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교감하게 되면서 타자로서의 이미지 뒤 평범한 사람, 혹은 개인으로서 북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비디오 작업은 상영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의 마지막 작가인 김영은은 경직된 남북한 국경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찾는다. 비무장지대(DMZ)는 지난 70년간 남북한 간의 완충 지대로서 역할해왔다. 모든 군사활동이 금지된 이 구역에서 마저도 남북한은 체제 선전을 통해 총 없는 전쟁을 해왔다. 작가의 사운드 작업 <총과 꽃>은 남측으로부터 설치된 DMZ 소재 대북 확성기를 주제로 다룬다. 북한의 실체와 남한에 대한 정보부터 시작해 기상예보와 한국 대중가요 등 다양한 정보를 북측으로 방송하는 이 확성기는 휴전선 건너 북쪽으로 15마일(24킬로미터)까지 그 소리가 전달된다고 한다. 이 소리가 먼 곳에서는 그저 소음, 혹은 진동으로 느껴진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작가는 확성기의 소리를 수집·변조하는 작업을 해왔다. 시리즈 속 작품 <조각된 두 사랑노래>에서 작가는 남한 사랑노래에서 고음역대만을 잘라낸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방송한다. 이렇게 재조합된 소리는 관객에게 마치 경보처럼 들리거나 혹은 로맨틱한 새의 지저귐처럼 들리기도 한다.


작가 약력:

송수민 작가는 1993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고 작업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미술 학사와 미술 석사를 전공했다. OCI 미술관 (2020년 서울), 아트사이드 갤러리 (2019년 서울), 스페이스 55 (2018년), 예술공간 서:로 (2018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금호 미술관 (2020년 서울), 북서울 시립미술관 (2016년 서울), 코엑스 (2018 서울), 사루비아다방 (2017년 서울), 인천시립미술관 (2017년 서울)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송수민 작가는 2021년 서울문화재단 및 청주 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창작지원 및 선정을 받았으며 2019년에는 OCI Young Creatives로 발탁되었다.

카일 타타 작가는 1990년 매릴랜드 볼티모어 출생으로 현재 로스엔젤레스에서 거주하고 작업한다. 매릴랜드 예술대학교 (MICA)에서 미술 학사를 전공했고 현재 UCLA에서 사진 미술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타타의 작품은 Walters Art Museum (2017년 볼티모어), Hamiltonian Gallery (2016, 2017년 워싱턴 DC), International Print Center (2013년 뉴욕), Spudnik Press & Gallery (2014년 시카고), Silvermine Arts Center (2014년, New Canaan) 등의 공간에서 전시되었으며 그의 아티스트 북은 LACMA (로스앤젤레스), International Center for Photography (뉴욕), Indie Photobook Library (워싱턴 DC)에 소장되어있다.

임재환 작가는 1995년 서울 출생의 행동주의 예술가다. 시카고예술대학교 (SAIC) 미술 학사와 UCLA 다학제적 예술분야 석사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ISI를 수료했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고 세계 시민권을 지지하는 단체 Humans of North Korea (HNK) 창립자 및 책임자다. 과거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문화·예술분과) 청년위원,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인권 학회 대표와 현대자동차 Art-Uni-On Fellowship 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서울문화재단 기획자 플랫폼 프로젝트 진행자로 선정, Hammer Museum Kay Nielsen Memorial 드로잉 대회에서 수상하였으며 국제 비정부 회의기구인 스트라방게르 인권 포럼 Global Network for Rights and Development (노르웨이), 시카고 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 (시카고), Broad Art Center (로스엔젤레스), Kerckhoff Art Gallery (로스엔젤레스), 헬싱키 대학교 (핀란드) 등에서 전시했다. 작가의 작품 및 소장품은 Los Angeles Contemporary Archive (LACA)에 기록 보관 되어있다.

김영은 작가는 1980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 한국과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과 학사를 졸업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매체전공 전문사를 졸업했다.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소놀로지 코스를 수료하였다. 2017년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Prix Ars Electronica (오스트리아) 에 입상하였다. 김영은의 작업은 Visitor Welcome Center (2019년 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 Municipal Art Gallery (2020년 로스앤젤레스), 서울시립미술관 (2019년 서울), 일민미술관 (2005년 서울), 리움: 삼성미술관 (2016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0년 서울), 대안공간 루프(2009년 서울), 사루비아다방 (2011년 서울), 리버풀 비엔날레 (2010년 영국), 두산갤러리 (2013 서울과 뉴욕), 카스텔로 데 베세노, 트란티노 (2015년 이탈리아), 베른시립미술관 (2021년 스위스) 등 유수의 국제 공간에 전시되었으며 지그 컬렉션 (스위스), 제주현대 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청년예술청 (한국), 부산현대미술관 (한국),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송은문화재단 (한국) 경기도미술관 (한국), 라익스 아카데미 (네덜란드), 코리아나미술관 Space*C (한국)에 소장되었다.